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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22.

개처럼 취급당하며 학교를 다녔기에...

며칠 전 경기도 의회에서 '초 중 고교' 학생 체벌 전면 금지와 두발 자유화 등을 뼈대로 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고 한다.

애들 너무 구속하지 말고 때리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문득 내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박정희씨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초등학생이였고 전두환이가 집권했을 때 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선생님에게 맞는 일이 당연한 것이였다.  잘못하면 응당 맞아야 하지만 별 잘못을 안해도 맞은 적이 많았다. 또 사소한 잘못에도 지나치게 맞는 경우도 허다했다. 

 

체육선생님과 교련선생님들은 응당 학생체벌의 선두주자였다. 어쩌다 신입교사들이 체벌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그들도 얼마지나지 않아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교사들만 체벌한 것은 아니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위계질서는 강했다. 1년 선배인 학생에게도 맞는 일이 적잖았다.

 

우리 모두는 그 당시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정을 제외하고는 좋은 추억이 없다. 고등학교시절 선생님들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와 친구들은 모두 선생님이었던 자들에게 '~새끼'라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2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도 '~새끼'라고 기억되는 교사들에게 복종하며 때로는 반항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지금 발표되는 학생인권조례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다. 그들의 머리 속은 '학생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고 각인되어 있다.

맞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 자라지 않았기에 자유스러워지면 학생들이 미친 소마냥 날뛰고 학교의 교육은 파행으로 갈거라고 생각한다.

 

개처럼 취급당하며 학교를 다녔기에 개처럼 취급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강렬한 에너지는 강한만큼여러가지 돌출행동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런 돌출행동들을 때려서 억누르는 것은  피동적인 복종만 부르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능동적인 복종을 어떻게 하면 유발시킬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했다.

 

SBS 모 프로그램에서 대책없는 아이들이 전문가의 교육에의해 180도 바뀌는 것을 본다. 그 전문가들은 아이를 개처럼 대하지 않고 인간처럼 대하며 스스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고쳐낸다. 아이가 대책없이 행동한다고 때리기만 하면 그 아이는 피동적인 인간이나 반항적인(나쁜 의미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의 매?  그런 것은 없다고 본다. 때리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사회에서는 위계서열이 중요했다. 원래 위례질서를 강하게 내세우는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은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도 아니고, 더군다나 위계질서에 목숨거는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도 아니다.  신분의 고하에 의해 사람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자체에 대해 존재가치를 두는 체제에서 살고 있다.

 

요즘 보면 '개나 고양이'를 패는 사람은 짐승취급 받는다. 하물며 사람을 때려서야 쓰겠나?

 

10. 5. 27.

리영희 '대화'를 읽고... (간략한 느낌)

 

대화 - 10점
리영희, 임헌영 대담/한길사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식 자서전인 '대화'를 읽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과 사상이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6.25 전쟁 시는 연락장교로 최전선에서 보내고 제대후 신문사에서 외신기자로 세상의 사건들을 접하며 편협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각과 예리한 판단으로 정세를 읽어내며

 

미국의 이기적 행동들, 이승만 정권의 실상, 4.19혁명, 5.16쿠테타, 그리고 군사독재를 격으며

 

언론인이자 대학교수로서 국민들이 오판하거나 알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실상과 남북문제, 중국의 혁명,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우리사회의 개혁의 일환으로 적확히 밝히신 선생님의 진실에 대한 열정에 감동에 감동을 더하며 읽었다.

 

세상은 다시 리영희 선생님 같은 열정에 차고,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지식인)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대화'의 1쇄가 2005년 3월이니 노무현 정부 때이다. 리영희 선생님은 지식인의 일정한 소임을 다하고 말년을 조용히 쉬려는 태도를 견지하신다. 1929년생이시니 고희를 넘기시고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며 죽음을 맞이하려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리영희 선생님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마도 아픈 가슴을 쓰다듬고 계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