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3. 25.

딴지일보 제2회 바보상, 김동일

딴지일보에서 퍼온 딴지총수의 글입니다.
혹 딴지일보 관련된 분이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니 퍼갔구나' 하며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이글의 마지막에 노무현 전 대통령 동영상을 제가 따로 붙입니다.

[이너뷰] 제2회 바보상, 김동일


2010.1.18.월요일

딴지총수

 

제 2회 바보상 수상자는 김동일씨다.

 


지난 2008년 5월 28일, 노무현 영결식 바로 전날.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글이 하나 게시된다.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 그 글 하나로 그는 20년간 몸 담았던 국세청에서 파면된다. 그리고 고소까지 당한다.

 

그러니까 그는 노무현 서거에 있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국세청 최초의 인물이자, 동시에 최후의 인물이다. 대한민국 국세청에서 단 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역시 바보가 틀림없다.

 

그를, 광주지검이 한상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당일이자 파면 부당성을 심사하는 행안부 소청심사 일주일 전인 1월 7일, 만났다. 아래는 본지 사무실을 방문한 그와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총수(이하 총): 나주 세무소 계장이셨잖아요. 6급 공무원으로. 그때 어떤 보직이셨나요?
김동일(이하 김): 나주 세무서 소득지원대장이라고요, 그게 무슨 일이냐 하면은 근로 장려 세제라고...

 

: 근로 장려 세제...

 

: 그게 뭐냐면 부부 합봉 천 1,700만원 미만의 가정에 최대 120 만원까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세무서가 세금을 걷는 일만 한다고 생각들 하시는데, 복지도 합니다. 작년에 첫 지급을 했습니다.

 

: 국세청에 계속 계셨죠.
: 예, 그렇습니다.

 

: 언제 국세청에 들어가신 겁니까?
: 90년 1월 15일 자로..

 

: 그럼 20년 세월인데. 문제의 발단이 국세청 내부게시판 나의 의견란에 ‘나는 지난여름에 국세청이 한일을 알고 있다’ 이란 제목으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요지에 글을 올리신 거잖아요. 그게 노무현 국민장 바로 전날인데. 5월 28일. 우선, 내용이 어떤 겁니까.

 

: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촛불이 한창 타오를 때인 2008년도 7월 30일경에 하게 됩니다. 60일 이상을 조사했는데... 태광실업은 원래 진해에 있습니다. 그럼 부산지방 국세청에서 조사를 해야 되는 것인데 서울청 조사 4국에서 조사를 했어요. 서울청 조사 4국은 율곡 비리 같은 초대형 비리, 수 조원 대에 달하는 정도의 규모의 대기업이나 비자금 조사를 하는 곳인데 재계 620위의 매출 3천억 원 정도의 김해 있는 회사를 교차조사를 했거든요.

 

: 교차조사는 어떤 건가요?
: 교차조사는 지방청끼리 관할이 다른 데...

 

: 아, 관할 넘어서.

 

: 네, 한 지방청에서 계속 관할을 하다보면 유착이 있을 수 있다, 해서 관할이 다른 지방청이 서로 상대의 관할을 조사하라고,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인데. 그렇다면 부산 지방 국세청하고 서울 지방 국세청하고 지방청끼리 교차수사를 했어야죠. 그래서 서울 지방 국세청의 지휘를 받았어야 해요. 그런데 한상률 국세청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그것도 조사 4국에서 했단 말이죠. 한다고 해도 2국이나 3국에서 담당을 했어야 했는데.

 

: 설혹 정상적인 교차조사였다 하더라도.
: 네.

 

: 백 번 양보해 교차조사를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4국이 개입되었다는 건 말 안 된다.

 

: 그렇죠. 또 안원구 국장을 통해 베트남 현지의 계좌까지 뒤지려 한 것 등 국세청의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건 처음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타겟으로 놓고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세무조사가 목적이 아니고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일로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했어요. 그 나라에서 내가 살고 있다. 이거를 도저히 제가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소위 국세청의 수장이 이런 비열한 행위를 했는데도 국세청 직원들이 그냥 국민을 대할 수는 없다. 국민들을 대할 때 우리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이런 것들이 밝혀진 이상 차제에 국민적 의혹을 다 털고 그 담에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그 글을 쓰게 된 거죠. 영결식 전 날에.

 

: 그런 심정이셨군요. 좀 차근차근 짚어보죠. 언론에서도 서울청 조사 4국이 나선다는 게 이상하단 이야기는 하긴 했었죠. 그런데 일반인들은 국세청 업무를 모르니까 감이 잘 안 오거든요. 그럼 과거에 이런 정도 규모의 지방기업을, 서울청 조사 4국이 직접 나서서 교차조사를 한 전례가 있었나요?

 

: 전례가 전혀 없습니다.
: 전례가 없다. 굉장히 특이하고 이례적이다.

 

: 그럼요. 그리고 만약에 교차조사를 서울청과 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교차조사라면 당연히 부산청, 서울청이 여러 건을 서로 올려서 교차조사를 서로 했어야 맞는데, 그런데 딱 두 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하고 관련된 두 건만.

 

: 태광하고.
: 정산개발, 골프장 관련.

 

: 그랬죠. 딱 두 건만. 그것도 6개월 동안이나. 이건 일반인들은 잘 몰라도 국세청에 계신 분들이라면 딱 집어서 이건 특별하게 예외적으로 기획수사 한 것이란 걸 안다...

 

: 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어디 목사님인가.. 헌금 형식으로 낸 수표까지 추적이 들어갈 정도였어요. 이건 정상적인 세무조사하고 다릅니다. 매출 누락 같은 게 어디로 흘러갔는지 보려고 자금 출처조사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건 애초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딱 잡으려고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 그럼 그 한상률 청장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보죠. 한상률 청장 전임이 전군표 청장이고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구속된단 말이죠. 대선이 한 달 전에.

 

: 예, 2007년 11월.
: 당시 한상률은 차장이었잖아요.
: 네, 차장.

 

: 청장이 되긴 했지만 청장 취임 순간부터 3개월짜리 청장이다, 어차피 정권 교체 되면 갈린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 국세청 내부에서도 그렇게들 알고 있었죠?
: 네, 그렇죠.

 

: 게다가 ‘신성 해운’ 로비 건으로 5천만 원 받은 게 드러났잖아요.
: 네, 그랬죠.

 

: 그런데도 이 양반은 살아남았어요. 이광재 전 의원이 ‘신성해운’으로부터 천만 원 받고 구속수사 됐는데 이 양반은 살았죠. 당시 그런 상황에 대해서 국세청 내부에서도 어떤 말들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한상률 전 청장이 바로 서울청 조사 4국장이던 2004년, 신성해운으로부터 5천만 원을 받았다고 하는 신성해운 이사의 구체적 진술이 있었으나 검찰은 이를 묵인하고 한상률 전 청장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그때 유임이 되기 위해 한 청장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눈에 보이는 것 중심으로. 신뢰도 평가 10% 이상을 올리겠다고 하고 전 직원들 봉사활동에 투입하고 전례에 없던 전 직원 강연을 한다든지. 취임 초기부터 그렇게 살아남고자 엄청 노력을 했지요. 하지만 그래도 한 청장이 전 정권이 임명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바뀔 것이다... 내부에서는 다들 그렇게 생각들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한 청장이 했던 일들이 실효를 거둔 게 아니라 정권 실세들과 포항에서 골프 회동하고 노무현 기획 조사하고 한 것 때문에 살아 난 거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 말씀하신대로 한상률 청장이 그때 노무현 대통령 친구가 대표였던 제주도 제피로스 골프장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척추 수술을 했다고 해서 우리들 병원, 노무현 대통령이 잘 갔다고 하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삼계탕 집까지, 토속촌인가요, 싹 뒤졌단 말이죠. 이런 것들도 정상적인 조사는 아니잖습니까?

 

: 그렇죠. 세무조사라고 하면 원래 정기조사가 있고 수시 조사가 있습니다. 정기조사는 4년 주기로 하는 것이 관례인데 다 못 채웁니다. 워낙 기업의 수가 많고 그러다 보면 5년, 7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런데 이런 곳들을 갑자기 교차조사의 형식으로, 대체 승인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교차조사의 형식으로 이 모든 걸 다 조사를 했죠.

 

: 관할이 아닌데 조사를 하려다 보니까 형식을 그렇게 갖췄군요.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박연차 건이 터진 건 아니거든요. 혹시 그때 이미 국세청 내부에선 그런 소문 같은 게 있었나요. 노무현 잡으려 한다...

 

: 그게 혹시 직원들 사이에 말이 떠돌까봐, 그 당시 이런 공문이 내려왔었죠.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린 직원은 가차 없이 처벌하겠다. 이런 내용의 공문이 내려왔죠.

 

: 아, 그 즈음에.
: 예. 그 즈음도 그렇고 이후도 그렇고.

 

: 그러니까 내부에 떠도는 소문이 밖으로 빠져나갈까봐 입단속을 시켰군요. 아니 그런 공문까지 내려오는 상황에서 그런 글을 올리셨단 말이에요?

 

: 그런데 거긴 국세청 내부 게시판이니까... 제가 그 글을 올리니까, 이게 처음엔 조세일보에 실렸어요. 하지만 전 조세일보 실린 줄도 모른 채 영결식에 갔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세일보가 5분~10분 정도 후에 바로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 기사를.
: 네. 국세청에선 제 글도 삭제해버렸고. 그래서 그 흔적을 없애 버렸죠.

 

: 근데 그게 어떻게 퍼져나간 거죠?

 

: 그게 이제 6월 1일 날. 영결식 끝나고 월요일 출근 하니까 감찰이 저를 잡으러 왔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지인들한테 감찰이 왔다... 가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하니 내 신변을 좀 체크를 해 달라... 그렇게 부탁을 했어요.

 

: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 네. 지인이 어떤 내용으로 가느냐고 물어서 얘기를 했죠. 이런 글을 썼는데 그것 때문에 조사가 나온 것 같다. 그러고 갔는데, 밤 10시까지 조사를 받고 나오니까 그때는 언론이...

 

: 알게 된 거군요.
: 네, 언론에 보도가 되었더라고요.

 

: 묻혀서 지날 수도 있던 걸 오히려 국세청이 일을 키운 거군요. 그 조사받을 때는 뭐를 묻던가요?

 

: 글 내용 다 하나하나 한 줄 한 줄 분석해가며 이게 뭘 의미 하는지 물어보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국세청 조직과 조직원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들을 찾으려 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데 저는 일관되게 한상률 전 청장의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 국세청이 아니라.
: 예. 국세청이 아니라 한상률 청장의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 당시 한상률은 더 이상 국세청 사람도 아니고.

 

: 그렇죠. 더 이상 국세청 사람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당황하더라구요. 국세청 조직과 조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야 징계도 하고 고발도 하고 할 수 있는데.. 제가 한상률 전 청장을 이야기하니까. 그래서 주어가 빠져 있는 문장이 있으면 그게 한상률 청장이 아니라 국세청이 주어다 이렇게 막 주장을 하더군요.(웃음) 제가 끝까지 아니다, 한상율 전 청장을 비판하는 거다. 실제 원래 글 내용이 한상율 청장을 비판한 것으니까요. 뭐 그런데도 조직과 조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파면처분 하고 검찰에서 고소하고 이렇게 된 거죠.

 

: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한상률 전 총장은 원래 자기 자리보전하려고 정권에 열심히 충성하고 있었던 건데, 이게 정치적으로 가기 시작한 건 촛불집회 때부터였잖습니까.
: 그렇습니다. 촛불집회 때가 기점이 된 겁니다.

 


: 그 촛불집회 때 당시 ‘배후’ 이야기를 많이 했었잖아요. 이명박 정권에서. 그래서 초를 어떻게 샀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었는데. 그런데 과거 정권들이 배후라고 할 때는 보통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촛불 때는 북한을 거론하진 않았어요. 당시 이명박 정권은 그 배후를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판단을 했다고 해요. 저도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했는데 일치하더군요. 촛불의 배후를 노무현이라고 본 건. 실제 이후 진행된 정황을 봐도 그렇지만. 그러니까 촛불을 잡으려면 노무현을 쳐야 되고 노무현을 잡지 않으면 다시 촛불이 일어난다...

 

그렇게 이명박 정권은 촛불 뒤에 노무현이 있다고 믿고 이제 4대 기관 모두 투입해서 노무현을 죽이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 건데. 그런데 초기에는 계속 헛발질을 했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노무현 정권과 좌파단체 수사에 소극적인 이유가 뭐냐.” 그렇게 촛불 수사에 미온적이라고 임채진 당시 총장을 몰아붙일 정도로. 그래서 정치권에선 검찰총장 곧 잘린다고 이야기 했었죠. 그러다가 마침내 검찰이 한 건을 한 게 세종증권 건으로 노건평씨고.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이제 홈런을 친 게 바로 한상률 청장 아닙니까. 박연차를 잡아서.

 

: 네.

 

총: 그래서 한상률 청장 본인은 장관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스스로도 했다고 하더군요. 큰 공을 세웠으니까. 2008년 12월 25일 ‘성탄절 골프로비’로 알려진 정권실세들과 경주 골프 때도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국토부 장관 자리를 달라고. 실제 이명박 정권은 컨테이너 박스로 촛불을 막으면서 몸 바쳐 충성했던 어청수 경찰청장까지도 실컷 써먹고 나서 이제 부담되니까 2009년 1월에 잘라 버렸는데 3개월짜리라던 한상률 청장은 계속 남겨 뒀죠. 그러다가 2009년 1월 12일에 문제가 터집니다. 학동마을 그림사건이. 그리고 바로 4일 후인 1월 16일 날 사표를 냅니다.

 

: 네, 전군표 전 청장 부인이 폭로 했었죠.
: 그 로비의 내용은 한상률 당시 차장이, 전군표 당시 청장한테 가서 내 라이벌을 잘라 달라고 한 것이고.

 

: 네. 김호업 당시 중부 국세청장을. 왜냐하면 중부 청장하고, 서울 청장하고, 국세청 차장은 국세청장의 차기 후보입니다. 그런데 김호업 당시 중부 청장이 한상률 전 청장하고 같은 행시 21기로 동기인데 승진에서는 빨라요. 4개월 정도. 한상률 당시 차장이 국세청장으로 발탁되는데 있어 가장 껄끄러운 사람이 바로 중부 청장이었던 거죠. 그래서 로비를 한 건데. 그러면서 그때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겼냐 하면 김호업 청장이 안 나가겠다 버텼어요. 그러니까 안원구 내치듯이 그때도 감찰을 동원해서 또 조사가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김호업 청장이 강하게 반발했죠. 반발을 하고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 당시에.
: 예. 김호업 중부 청장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했겠죠. 결국 버티다, 버티다 안 되니까... 이 분도 안원구처럼 버티다, 버티다 안 되니까 결국 나가면서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죠. 그런데 청에서 즉각 그 메일을 삭제를 해버렸어요. 결국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내용을 못 봤죠. 이게 새벽 다섯 시에 메일이 가도록 미리 예약을 해 놨나 봐요. 예약발송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일반직원은 전 직원을 상대로는 메일을 보낼 수 없거든요.

 

: 중부청 직원이 아니라 국세청 모든 직원에게.
: 예, 모든 직원에게.

 

: 그런데 아침에 바로 메일 전체 회수를 한 거군요.
: 예.
: 그럼 많은 사람이 메일을 열어보지를 못 했겠군요.
: 그렇죠.

 

2007년 4월 23일, 퇴임일 오후 8시에 맞춰 김호업 전 국장은 국세청 1만 8천여 직원 전원에게 메일을 보냈으나 이 중 약 2천 여 명이 메일을 확인할 즈음 메일이 회수됐다.

 

: 본인은 보셨나요?
: 저는 즉시 출력을 해서 내용을 봤습니다. 오래 되어서 정확한 문구는 생각나지 않지만 서운하다고 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어요. 어쨌든 그런 과정을 내부에서 전부 지켜본 저로서는 한상률 전 청장이 전군표 청장에게 김호업 청장을 잘라 달라고 했다는 것은 사실일 거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걸 누가 이야기를 했느냐,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이미경씨가 했거든요. 왜 그럼 그걸 폭로했겠냐. 이명박 정부 들어서기 전에 국세청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고 이걸 추궁을 하니까 한상률 청장이 자기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 모든 책임을 전군표 청장에 다 밀었다고 해요. 사실 그 시절 한상률 전 청장이 조사 4국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오히려 한상률 전 청장이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자기는 빠져나가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전군표 청장 입장에서는 자기는 이미 구속 되었는데 자기한테 다 덤탱이를 씌워버리고 한상률 자기만 살려고 한다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 아니겠는가. 전군표 전 청장도 국세청 내부에 자기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상률 전 청장이 그렇게 작업을 해서 모든 걸 다 덤탱이 씌워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죠.

 

: 자기가 키워줬는데.

 

: 네. 이미 수감되어 있는 선배에게 말이라도 따듯하게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덤탱이를 다 씌워버리니까... 그런 과정에서 부인이 학동마을 이야기를 해버린 거죠. 그 이야기를 나중에 안원구 국장의 부인 홍혜경씨가 맞다고 증언을 한 거구요. 이제 되돌아보면 한상률 청장이 노무현 정권 끝나면서 자신도 국세청 조직을 위해서 딱 그만 두었다면, 그런 각오로 일을 했다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도 없었을 테고, 저도 글을 안 올렸을 것이고. 국세청 조직도 이렇게 국민들한테 버림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안원구 국장의 부인은 왜 그런 증언을 했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한상률 청장이 현 정권과 끈이 없을 때 안원구 국장을 통해 정권 실세와 연결을 하는데, 그때까진 사이가 좋다가 청장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기 시작하니까 안원구도 잠재적 라이벌로 보고 한직으로 밀어 물을 먹이니까 열 받아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안원구 전 국장은 26기로 자기 기수에서는 국세청 내 행시 출신이 자신 포함 2명밖에 없어 초고속 승진을 거듭, 다섯 기수나 위인 한상률이 포함된 21기들과 승진을 경합했으며 국세청 내에서는 탄탄대로로 청장이 될 인사로 거론되었다.

 

: 안원구 국장의 말을 그대로 인용을 하면, 처음엔 협력을 해주잖아요. 한상률 국세청장이 청장 취임할 때까지는. 지인들도 만들어주고 또 정권과 연결도 시켜주고. 그 문제는 제 추측일 뿐이라 조심스럽지만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결국에는 돈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안원구 국장한테 3억을 요구를 했는데 안원구 국장이 안 줬어요. 그런 일은 돈과 함께 물려서 같이 가야 하는데, 그런데 돈이 안 가버렸단 말이죠. 그러니까 한상률 국세청장이 다른 사람을 찾았겠죠. 함께 가고 돈도 가고 그럴 사람을.

 

: 그래서 한상률은 안원구를 좌천 시키잖아요.
: 그렇죠. 서울지방 국세청 세무관리 국장으로. 한 두 단계에서 세 단계 정도 아래죠.

 

: 그렇다면 안원구 입장에서 보자면, 아니 자기가 전부 연결해주고 길도 닦아 줬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했는데 나한테 돈까지 요구한다, 그리고 돈 안주니까 나를 죽이려고 한다. 이러면서 열 받았을 거 아닙니까. 엄청나게.

 

: 인간에 대한 배신이라고 느낄 수 있겠죠.

 

: 그럼 전군표 청장 부인과 안원구 국장 부인은 같은 처지가 되는 거 아닙니까. 도와줬는데 팽 당하는.
: 라이벌 치워줬는데 팽 당하고, 안 되는 거였는데 도와줬더니 팽 당하고.

 

: 그래서 부인들이 의기투합을 한 게 아니냐. 그런 점도 있겠죠.
: 서운한 것이 맞아 떨어져서 협력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폭로가 사실은 안원구 전 국장의 작품이라는 설까지 회자된다.

 


: 사실 안원구 국장 부인이, 전군표 청장 부인의 학동마을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게 사실이라고 증언해줄 필요는 없었잖아요.

: 그렇죠. 안원구 국장 부인의 폭로가 그때 바로 있지 않고, 한참 후에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이미경씨가 ‘해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해 학동마을 그림로비를 최초로 제기한 것이 2009년 1월 12일, 다시 안원구 전 국장의 부인 홍혜경씨의 인터뷰가 ‘중앙선데이’에 게재된 것은 10개월이 지난 11월 22일이었다.

 

한상률 청장이 당시 안원구 국장에게 내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러면서 안원구 국장이 국제 조세 관리관을 했고 하다 보니 태광의 베트남 현지공장 계좌 확보하는데 베트남 국세청의 협조를 받기가 쉬울 것이다, 해서 안원구에게 그 일을 시키지요. 하지만 안원구 국장 입장에서는...

 

: 이미 한상률 청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 예. 자기가 도와줬는데 자기가 청장이 되자마자 내치는 사람인데, 이미 이 사람은 이용만 하고 내치는 사람이다, 그렇게 인식을 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거절을 하게 된 것이고 거절을 하니 이제 내친 것이고...

 

: 그 구도는 대충 알겠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뭐냐면, 국세청 과거 관례로 볼 때 학동마을 그림 정도의 일로 청장의 목이 날아가지는 않잖아요? 선물 줬다고 해버리면 되는 거고.

 

: 그림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 더군다나 한상률 청장이 노무현을 잡는 커다란 공을 세웠는데, 게다가 다들 3개월짜리라고 했는데 용케 살아남았단 말이죠. 통상적으로 말해 국세청장이 물러날 정도로 큰 사건도 아니고 또 본인도 그 정도로는 물러 날 일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물러났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잘린 거죠. 사표도 사실은 청와대가 먼저 알렸죠. 앞뒤 정황으로 보면 당연히 정권이 부담되니까 또 노무현 잡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기자들이 한상률 파고들까봐, 아예 미국 보내버린 건데. 그래서 1월에 잘리고 3월에 출국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 당시 국세청 내부에서는 어떤 소문들이 있었나요?

 

: 전 그 때도 한 청장이 조직을 위해서도 빨리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던 터라, 제가 당시 아는 사람 통해서 어떻게 돌아가는 지 사정을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한 청장이 자기는 끄떡없다고, 물러나기 3일 전까지도 끄떡없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 한상률 청장은 사표 발표가 나기 전날까지도 자신이 사퇴한다는 것은 “인사 불만 때문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한 사람(안원구)에게 조직 전체가 휘둘린 꼴이 되고 만다”면서 사퇴를 거부했다고 한다. (노컷뉴스 1월 16일, “한상률 국세청장 낙마하기까지” )

 

: 역시 본인은 관둘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네요.
: 네 전혀 관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아마 이게 정권실세로 번지지 않을까..
: 하는 두려움 때문에.

 

: 네, 또 태광 세무조사가 또 웃기는 게, 그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서 다시 또 다른 로비가 들어간 부분이 있거든요.
: 그렇죠.

 

: 그러다보니까 이게 여러 가지로 정권실세하고 연결될 수가 있고...
: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실세와의 연결고리는 한상률 전 청장이 미국으로 출국한 일주일 뒤인, 3월 23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구속하는 것으로 차단한다.

 

: 네. 그래서 신속하게 해외로 보낸 게 아니겠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 한상률 청장이 미국으로 나간 타이밍이 또 기가 막히죠. 2008년 3월 14일 검찰이 박연차 본격수사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인 3월 15일 한상률 청장이 출국하죠. 그리고 나흘 후인 3월 19일 동아일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50억 수수설을 보도하고, 3월 25일 조선일보가 처음으로 한상률과 대통령의 독대를 보도합니다. 2008년 11월경 한상률 청장이 태광 건을 들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건너뛰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 뭐 그런 내용을.

 

한상률 전 청장이 당시 청와대 민정라인을 건너뛰고 대통령과 독대를 하며 검찰에는 정보를 주지 않자 이에 분노한 검찰 출신인 민정라인은 2009년 5월 6일, 서울지방국국세청 조사 4국을 건국 이래 최초로 압수 수색함으로써 복수한다.

 

: 사실 국세청장은 대통령과는 독대를 해면 안 되는 겁니다. 그거를 했다고 하면, 국세청이 정치적 집단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정권이 어느 기업은 살려주고 어느 기업은 죽이고 할 때 도구가 됩니다.

 

: 그렇죠.

 

: 제가 이용섭 국세청장(제 14대)을 최근에 광주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임기 중에 대통령과 독대를 한 적이 있느냐고. 자기 임기 2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국세청장은 대통령과 독대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 노무현 대통령하고는.
: 예.

 

그랬단다.

 


 

: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그런 게시물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정황부터 먼저 길게 이야기 했는데, 이제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본인 이야기를 해보죠. 게시물은 그거 하나였나요?

 

: 예, 하나였습니다.
: 바로 삭제를 당했죠?

 

: 다음 날 제가 영결식 가느라 연가를 내고 출근을 안 했는데, 삭제가 되어 있었죠.
: 바로 삭제되고 6월 4일 징계위를 통해 해고가 되셨는데.

 

: 해고 전까지는 출근은 하셨죠?
: 출근을 못했습니다.

 

: 아예 출근을 못하셨나요?
: 예.

 

: 그때까지만 해도 파면이 결정된 게 아니었잖아요?

 

: 파면 전에 직위해제가 바로 됐죠. 국세청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시켜버린 거죠. 보직도 없애고 메일 소통도 할 수 없게 메일 계정도 없앴어요. 그래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 핸드폰 번호라도 적어놓으려고 했더니 제 자리에선 조직도도 안 떠요.

 

: 그럼 징계위에선 논리가 뭐였나요?
: 품위유지위반.
: 국세청 명예를 실추시켰다.

 

: 네, 국세청에 조직과 조직원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 그런데 원래 국세청이라는 곳이 위계가 강하고.
: 폐쇄적이고.

 

: 보수적이고 그런 조직인데, 그런 글 쓰실 때부터 이미 아, 이 글로 인해 큰 화를 입지 않겠느냐. 이런 걱정은 안 하셨어요?
: 안 했습니다.
: 그건 내부게시판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신 건가요?

 

: 아니, 내부게시판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때부터 현직 청장을 놓고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내부게시판에서 그런 비판을 했었어요. 그런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그런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현직 청장도 아니고 전직 청장을 비판한 것이거든요.

 

: 더군다나.
: 더군다나. 그래서 당연히 문제가 될 리 없다...
: 현직 청장도 아니고.

 


: 네. 그리고 글 하나로 사람을 자를까. 단 한 번도 상상을 안 해봤어요. 게다가 제가 쓴 내용은 이미 신문에 보도가 된 것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만약 그 언론의 보도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면 국세청 입장에서 그 보도내용에 대해 반론보도 청구를 하던지, 언론중재위 통한 방법을 강구를 했어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있다가 직원이 내부 게시판에 그 언론 보도내용을 기반으로 몇 줄 썼다고 해서 파면시킨다... 정권이 그런 무리수를 둘 수 있다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를 않았어요.

 

: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현 청장, 현 정권을 막 공격해도 아무 일 없었는데 설마 현직도 아니고 전임 총장에 대해, 언론에 다 보도된 내용을 지적하는데 이거 가지고 나를 뭐 어떻게 하겠느냐 그땐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다들 그렇게 황당하게 생각하죠. 그럼 직위 해제되고 파면되고 고발되고 일사천리로 막 진행되면서 당황도 하셨겠네요.

 

: 그럼요. 처음에는. (폭소)
: 직위해지 되고 3일 후에 바로 파면이니까. 졸라 빨라요.(폭소)

 

: 통보는 언제 되었나요?
: 6월 15일인데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 관련된 건 바로 이슈가 되다 보니까. 파면 시켜놓고도 계속 감췄죠. 기자들이 먼저 알더라구요.

 

: 본인에겐 정식 통보하지 않다가.
: 네. 그러다가 6월 15일, 파면 통보가 왔어요. 그런 걸 보면 정권이 지금 착각하는 게 공무원이 정권에 예속된 건 줄 알아요.

 

총: 그렇게 생각하죠.
김: 아주 잘못된 생각이거든요. 공무원은 대한민국에 예속된 것이고, 국민에게 예속된 것이지, 정권한테 예속된 게 아니거든요. 정권 5년 금방 지나갑니다. 벌써 2년 지났잖아요. 

 

: 힘들게 지나갔죠.(웃음)

 

: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지금 정권은 좌빨 10년이니 잃어버린 10년이니 자꾸 이야기하는데, 저는 좌빨이 뭔지도 모릅니다. 무식해서, 그런데 이거 하나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아, 이 정권이 집권함으로써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어버렸구나.

 

: 비리가 아닌 사건으로 국세청에서 이런 식으로 즉각 파면된 전례가 있나요?
: 전례가 없죠.

 

: 파면만 된 게 아니라 그 다음 달인 7월 16일 광주지검에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달인 8월 광주 남부경찰서에서는 무혐의 결론을 냈어요. 그래서 아, 이게 역시 무혐의로 끝나나 보다 했는데. 검찰이 그걸 다시 뒤집어서 명예훼손 기소 결정을 했어요. 그게 바로 오늘이죠. 그런데 그 이유가 정말이지 걸작인게, 한상률이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폭소) 아니 한상률이 처벌해 달라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가요.

 

: 그렇죠. 그러면 저도 불만 없어요.
: 그런데 한상률이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라니. (폭소) 그거야 기소를 하려면 자기들이 물어봐야 되는 거지. (웃음)

 

: 그렇죠. 한상률 청장한테 물어 봐야죠. 하다못해 미국에 팩스라도 보내서 김동일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글을 올렸는데 이걸 처벌하겠느냐고 최소한 물어는 봐야죠. 기소를 하려면. 그렇게 물어봤는데 처벌하라고 했다면 제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가 있다니까요. 그런데 물어보지도 않고, 소재파악도 안 된다면서, 처벌하지 말라는 의사를 밝혀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니.
 
: 한상률, 그 분의 속내를 우리 검찰은 독심술로 다 읽었다, 이거죠. (웃음)

 

: 지금 한상률 청장이 나를 개인적으로 고발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검찰이, 국가기관이 대신 나서서 그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는 거잖아요. 그럼 한상률 청장이 처벌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검찰이 나섰다고 해야 말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상률 청장이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아서라니. 그 사람이 고발한 게 아닌데.

 

정말 국세청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한상률 청장이에요. 국세청 조직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검찰이 오히려 나서서 기소한다. 제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 더구나 한상률 청장은 자기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검찰에 요구한 적도 없는데. 검찰이 한상률 비선가. (웃음)

 

: 그리고 행안부에 파면의 부당성에 대한 소청심사 하신 걸로 아는데, 그걸 6개월 동안 질질 끌다가 시한 끝나기 바로 전에 일정이 다음 주로 잡혔어요.

 

: 네. 3일 남겨놓고요

 

: 뭐, 저로선 이 정권 하에서는 절대 복직은 안 시켜줄 거라고 보는데, 복직이 안 되면 바로 행정소송으로 가실 건가요? 민변에서 도와주기로 했나요?

 

: 네. 다행히. 그래도 민변에서 도와주시니까 그나마 지금 버티는 것 같아요.
: 소청심사로 복직 기대는 안 하시죠?
 
: 네, 저도 하등 기대는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절차를 꼭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는데 제 일이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서 지금 하는 겁니다.

 

: 그런데 본인이야 그런 의지가 강하다고 하시지만, 가족들에게는 이게 청천벽력이잖아요. 작년에 따님이 고3이었고 아드님이 고1이었는데, 영향 안 받았습니까.

 

: 영향을 받았죠. 아무래도.
: 부인도 충격을 많이 받으셨을 텐데.

 

: 집사람이 고통을 많이 겪었어요.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때는 더 심한 글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내부 게시판이고, 언론에 다 보도된 것이고, 그런데 이렇게 된 게 집사람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거죠.

 

: 앓아누우셨겠네요.
: 막 가슴이 바늘로 이렇게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온다고 해요. 그래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놈의 정권이 5년인데, 우리 5년 동안은 죽었다고 생각하자. 우리 죽었다고 생각하고 견디다 보면 또 좋은 날도 있고 그러지 않겠느냐.. 그렇게 설득 하는 수밖에...

 

: 아니 근데 설득이 둘째 치고 당장 생활이 어렵잖습니까. 생활이.

 

: 그래도 주위에서... 도와주시니까. 근근이.
: 주위라 하시면.

 

: 뭐 주변에서 좀 이렇게... 또 집사람이 이제 일도 좀 나가고... 그러고 있어요... 그래도 감옥에 갇힌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자, 그래요.

 

: 그런데 완전히 파면이 되셨잖아요.
: 그러니까요. 파면이 아니면 제가 퇴직금을 타 가지고 그걸로 버티자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퇴직금도 못 받거든요.
: 그럼 연금은요.
: 그것도 안 되죠.
: 연금까지. 아... 씹새끼들... 그럼 주변 사람들은 어때요. 겁나서 곁에 잘 안 오죠?

 

: 처음에는 통화하는 것도 꺼렸죠.
: 감시 당할까봐

 

: 제가 5월 23일부터 6월 11일까진가 통화량을 전부 압수당했어요. 이게 명예훼손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전화통화를 조사한 건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데, 하여튼 했어요.

 

: 이 정권에서라면 당연히 그런 짓을 하죠. 틀림없이 사주를 받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겠냐 그런 생각으로. 그런데 지금 부인은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원망은 안 하시나요.

 

: 그게.. 이게 원망해서 될 일이겠습니까. 허허허...

 

: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 그래도 의연하게 잘 견뎌주는 것 같아요.

 

: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다는 걸 이해하는 나이잖아요.
: 그렇죠. 처음엔 이제 조금 힘들어 했었는데.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 나는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는 것을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대통령이  자살을 했는데, 원인과 결과는 있는데 누구 하나 그거를 책임지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또 그게 또 공교롭게도 우리 조직의 수장이었는데 단 한마디도 없다.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 그렇게 설명을 하셨군요.
: 네. 그리고 제가 가만 생각해봐도 이대로 이게 묻히면 지금은 아이들이 나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이게 역사가 되면 동시대에 대통령이 자살했는데 아빠는 그때 암말도 안하고 입 다물고 있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제가 할 말이 있겠어요...

 

: 그러니까 자녀들도 이해하고요?
: 네.

 

: 앞으로는 3년을 어떻게 견디실 생각이십니까?
: 세월 금방 가더라고요. 하하하하..

 

김동일 씨의 안녕을 위해 대화 내용은 여기서 줄인다.

 


 

그는 이 대화가 있던 날 검찰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기소가 되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2010년 1월 15일, 그러니까 90년 1월 15일 국세청에 들어간 지 정확히 20년 만에 이명박 정권에 의해 국세청에서의 퇴출이 공식 확정된다.

 


1월 15일, 그의 해임을 알리는 행안부 소청심사결과 문자 통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부끄러웠다고. 국민들 앞에서 죄인 된 심정이었다고. 그래서 그저 자식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런데 정작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진짜 죄인들은, 그런 그에게 온갖 핍박을 가한다.

 

씨발넘들.

 

그런 그에게 2백만 원과 바보상 밖에 안겨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리고 참 고맙다. 그 자리에 그렇게 버티고 있어 주어서.

 

본지는 그가 이 후진 세월을 이겨내고 소송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복직되는 그 순간까지, 그와 함께 갈 것이다. 독자제위의 동행 역시 바라마지 않는다. 꾸벅.

 


그럼 제 3회 수상식까지, 졸라.

 

                                      바보상시상위원회위원장  딴지총수(chongsu@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