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4. 10.

비주얼은 우리를 상품으로 만든다

비주얼은 우리를 상품으로 만든다


어김없이 TV를 틀면 연예인들이 왁자지껄한 수다로 채널들을 점령한다. 남자의 조각같은 몸매와 여자의 말라비틀어진 몸매에 야단법석을 피며 환호하고  그러한 몸매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해댄다.

 

내가 이상한 걸까?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 마음이 산란스럽다. 리모콘으로 체널을 이리저리 눌러대다가 멈추는 곳은 뉴스프로그램이나 네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이다. 나만 이럴까?

나이 탓이거나 취향 탓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하지만 분명 짚고 넘어갈 것이 있기도 한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비주얼에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반성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결국 사회는 비주얼 중심으로 흘러만 가는 것 같다.

 

비주얼 중심은 자본주의의 필연일까?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환원시키는 걸까?

상품은 보여주기를 통해 판매된다. 광고 광고 광고... 세상이 광고 천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상품을 팔기위해 광고를 하고 그에 따라 비주얼이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가 되었다고 자본주의에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 시장경쟁은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함께 존재할 필연일지 모른다. 인류는 사적 소유의 일반적 자유(소유권)를 얻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해왔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소유권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자본주의는 자유를 바탕으로 일정한 제한을 받아 들이며 인류 공동체에 적응해 왔고 적응 중이다. 자본주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떠한  모습으로 공동체에 기능할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는 우리가 충분히 조절 가능한 이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어 우리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든 것 같다. 사람 저마다 하나의 주체이건만 우리는 객체화(상품화)시키기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 뚱뚱하면 어떻고 대머리이면 어떻고 키가 작으면 어떤가. 이들을 마치 잘못된 상품처럼 몰아대니 뚱뚱한 것을 죄처럼 생각하고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난리법석을 피고 키가 작다고 평생 스트레스를 받는 것 아닌가. 사람은 그의 마음자세, 생활자세로 평가해야 한다. 즉 인격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외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겉보기 좋은 것이 잘 팔리는 것은 상품일 뿐이다.

 

눈을 현실로 돌려보자. 거리에 활보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몸들은 천차만별이다. 공원에서 다정히 산책하는 부부가 모두 남들이 말하는 미남미녀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현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외모에 비관하며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 아쉬워하고 조금 불만족하며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자신들을 상품가치가 없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런데 TV 기타 방송출판매체에서는 공공연히 비주얼이 좋은 것이 뛰어난 상품이고 당연히 품질이 좋다고 한다. 그것도 사람을 말이다. 홈쇼핑에서 말라비틀어진 여자를 팔지만 않을 뿐이지 기실 파는 것과 같이 대한다. 그여자의 마음자세가 어떻고 생활자세가 어떤지는 안중에 없다. 그저 이쁘면 된다.

 

사회가 비주얼을 중시하고 사람들이 상품처럼 취급당하는데는 자본주의의 필연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자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당는데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목적이 돈이고 돈을 위해서는 뭐든지하는 앞뒤가 전도된 가치관들을 목격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된 풍만한 여성을 그렸듯이 우리도 다시 사람의 외모보다는 인격이 중요한 것이고 본질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TV 기타 방송출판매체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을 상품화시키는데 큰 책임이 있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가 사라지기위한 구체적 운동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국가도 노력해야 한다.

 

'나'부터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