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4. 26.

이제 비판은 이명박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명박씨가 집권한 오늘의 현실이 잘못되어 가는 것이 많아서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주로 정치적인 글을 쓰려 했습니다.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해 비판을 할 수록 씹기 좋은 인간들을 씹어만대고 뭔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그냥 놔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가 커졌습니다.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무렵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선일 저녁에는 기쁨에 넘쳐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차츰 차츰 정치적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때로는 비난을 받아도 우리나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저는 노사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방관했지요. 노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업무가 정지되었을 때도,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을 때도 방관했습니다.

 

그 당시 총선에서 저는 민노당을 지지했지요.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약자들을 대변하는 힘없는 당이 세력을 얻기를 바랬을 뿐입니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다양성의 존중과 공정한 경쟁, 대화와 타협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니 조금씩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하지만 이명박씨의 부도덕성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이명박씨나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중도실용노선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요. 오히려 이명박씨와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니 잘하길 바랬습니다. 서민경제를 챙겨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였습니다.

 

사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독재권력입니다. 그러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 이르는 독재권력을 계승하지않고 보수적인 정당으로 탈바꿈되고 지금의 민주당이 진보적인 정당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발전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램이었지요. 이명박씨와 한나라당은 역시 독재권력에 뿌리를 두고 이어져 온 무리라는 것이 바로 드러나더군요. 지금의 우리 정치 사회상황들은 많은 투쟁과 목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들은 짧은 시간에 간단히 부셔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흡하나마 정치에 관계되는 글을 적어서 이들을 비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상의 많은 비판자들 중 한명이 되겠다는 것이었지요.

 

다소 막연하게(이념적인 지향은 있지만 체제에 대한 깊은 숙고없이) 이명박씨와 한나라당 그리고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기시작하며 여러 의문이 생겼습니다. 의문점은 시대상황과 관계하고 이념적인 문제와 관계하고 철학적인 성찰과 관계했습니다.

 

독재시절에는 '적'이 명확했습니다. 독재자와 독재권력을 깨부수고 민주주의를 이룩하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명박씨나 한나라당은 독재권력은 아닙니다. 그들도 민주적 정당성이 있고 민주적 절차의 테두리 내에 있습니다. 야권의 대표격인 민주당도 진보적인 성향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명박씨나 한나라당은 극우, 수구세력이고 민주당은 보수세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분류인 것 같습니다. 더이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이명박씨나 한나라당을 적으로 간주하여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주소 설정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생각하기에 앞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루 하루 일상에 얽매여 살면서 추구한 가치는 무엇이었나. 무엇을 그토록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었나...모두 돈인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경도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틈엔가 물질적인 욕구들로 채워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 자신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는 '돈'이 되었습니다. 부도덕해도, 성정에 결함이 있어도 돈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성공한 것이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연예인들이 추앙받는 직업이 된 것도 그렇고 이건희씨 같은 비도덕적인 기업인이 용서를 받는 것도 그렇고 이명박씨 같은 간악한 거짓말장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모 카드사의 '부자되세요'라는 광고문구는 사회적으로 유행어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복많이 받으세요' 대신 '부자되세요', '돈 많이 버세요' 로 바꾸어 인사를 합니다.

 

독재권력에 눌려 자유가 없는 이 나라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되니 이제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합니다. 인간자체도 예술도 자연도 모두 공산품화 됩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상품을 팔아대야 돌아가는 원리이니 자유가 중요하고 경쟁이 중요하고 수요와 공급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본은 필연적으로 자본을 가진자에게 집중됩니다. 자본주의 아래서 자유로운 경쟁은 빛좋은 개살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에 종속되어 소외되어가는 사회구조가 되지요. 그래서 서구의 선진화된 나라들은 자본주의를 경제원리로 삼지만 자본의 집중과 자본으로부터의 소외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불균형을 제거하기위해 복지원리를 도입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이념적 장치들에 제한을 받거나 조절되어야 존재이유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지구적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자본주의가 제한을 받거나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가 사회제도를 만드는 이념을 규정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회 정치 문화적 상황에서 자본은 독재권력처럼 행세합니다. 세상은 자본의 논리로 돌아갑니다. 자본주의가 사회 정치 이념을 규정한 하나의 모습이 '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에는 자본과 경쟁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허울 뿐입니다. 실질은 자본의 지배, 자본에 의한 지배, 자본을 위한 지배입니다. 신자유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이명박같은 치졸한 인간도 경제적 성공신화라는 허울을 가지고 대통령에도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지금 이명박을 까부수고 비난해도 또다른 이명박은 나올 수 있는 구조같습니다.

 

여기에 제 고민이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비판해도 우리가 지금 걷고있는 체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어떤 혁신적인 개선이 없이는 언제나 치졸하고 간악하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집권을 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이든 의식적이든 젖어 버린 자본에 대한 애착을 다른 각도에서 심각하게 반성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돈이 부족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사회적인 경쟁에서 낙오되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성찰, 인간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극우 수구세력인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판은 그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자리한 이념적인 것들의 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