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5. 14.

내가 그걸 쓰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법대를 졸업했고 사법고시도 준비를 했었기에 공인중개사 시험은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험의 난이를 떠나서 공인중개사로서 사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은 것 같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던차에 친한 친구가 매달 어느 정도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자기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 시험을 보려고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중도에 그만 두었었다. 양심에 허락치 않았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누군가가 부동산에 대해서 잘안다고 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지난 일을 이야기하니 나를 바보 취급을 한다. 매달 일정액의 돈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고...   순간 약간 화가 나길래 '자격증이나 빌려주는 것은 내 철학에 맞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변사람들도 나를 비판한다. 그렇게 까탈스럽게 살 필요가 무엇이냐고 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뿐 아니라 여타 자격증을 빌려주어 일정액의 돈을 지불 받는다는 이야기는 솔잖게 들어 알고 있는 바이나 내 친구는 물론 지금의 동료들도 응당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며 접대를 배웠다. 하루는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허위로 물품수량을 기입할테니 술값을 챙기라고 하길래 거절했다. 내가 거절한 것은 아니고 내 윗 상사가 거절한 것이다. '넌 그런 추잡한 행동하지 말라' 며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그 분보다 더 높은 양반이 거래처와 단가를 허위로 작성해서 실제로 술값을 챙기는 일이 발각되었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그 높은 양반은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가 관여했었던 재료공급처의 견적은 지나치게 높은 것을 알아냈고 우리는 거래선을 정리하게 되었다.

 

부정한 행위는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당연시 하는 모습들... 오히려 정당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보취급이나 당한다.

 

검사도 검사생활을 하며 부정하게 변했을 테고 국회의원도 국회의원하면서 부정하게 변했을 테고 대학 총장도 부정하게 변했을 테고 교사들도 부정하게 변했을 테고 사업가들은 사업하다 부정하게 변했을 터이다. 부정한 행동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며,반복하며 만성이 되고 무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씨도 부정한 행위를 세트로 하고 다녔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보면 이제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부정한 행위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따위는 사라질 판이다.

 

지역사회나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을 잘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부정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결국 우리의 공동체는 부패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부정한 행위를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의 이기적 욕구의 지나침인 것 같다. 누구나 이기적 욕구는 있다. 이기적 욕구가 적정선에서 남에게 피해를 가지 않는 선에서 행동의 동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기적 욕구의 충족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부정한 행위는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기적 욕구의 지나친 집착 때문에 부정하게 변해가는 이유가 과도한 경쟁체제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약육강식과 1등 제일주의식 신자유주의 사고와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공동체 속의 조화나 이타적인 삶보다는 승리하는 것, 이기는 것을 우선시 하고 승자만을 찬양한다. 이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방식과도 맥이 닿는다.

 

그러나 아직 사회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있고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때묻지 않는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그놈의 1등이 중요한게 아니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김규항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언젠가 우연히 <지식체널 e>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제주도 해녀 할머니들이 나와요... 인터뷰어가 그중 연세가 많아 보이는 팔십 대 할머니에게 물어요.

"할머니,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훨씬 편하시잖아요?"

"그럼 편하지. 혼자서 100명 몫은 하지".

"그런데 왜 안 쓰세요? 힘드신데".

그러니까 할머니가 대답하길

"내가 그걸 쓰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